첫 등장부터 강렬하다. 빨간 의상을 입은 이지희가 무대 중앙에 서다. 마치 공연명인 <벼리>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한자 ‘벼리 강(綱)’이 있듯 단단함, 중심이 그 핵을 이룬다.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벼리’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근본이나 뼈대를 되게 하는 중심을 뜻한다. 사회적 의미까지 담고 있다. 여기에 가림다댄스컴퍼니 대표이자 무브포켓 프로젝트(Move Pocket Project) 대표인 이지희 안무자는 ‘벼리’의 의미를 무대미학으로 끌어올렸다.

이번 공연(8.25~26, 강동아트센터 소극장)은 제27회 창무국제예술제에 신설된 공모 경연 프로그램 중 하나다. ‘창무 드림 프라이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벼리’는 안무자의 예술철학이 녹용된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이지희는 그동안 <그림자나>, <Dots>, <바다와 조각들>, <기억그리기>, <기억의 숲에는 메아리가 없다>, <Moonlight-그을린>, <새벽>, <Stone>, <Stone Vol.2>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메시지와 메타포를 설득력있게 전달한 안무자이다. 이번 작품(예술감독 손관중)을 통해 ‘이지희표 레퍼토리’에 <벼리>가 단단하게 자리잡은 건 또 하나의 예술적 성취다.

무대 중앙에서 선 이지희는 무대 후방에서 앞으로, 다시 옆으로 이동한다. 이후 뒤쪽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긴다. 대지를 상징하는 사각 구조물이 비밀을 품은 듯 자리잡고 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무대세트다. 수레바퀴 모형속에서 사람들이 서서히 나온다. 생명의 탄생이 수줍게, 은밀하게 일어난다. 자연과 사람의 공존이 일어나는 곳이자 ‘벼리’가 필요한 충분조건이다. 하지만 이를 필요조건, 더 나아가 필요충분조건까지 안무자는 끌어올리는 역량을 발휘했다. 공존에는 반대급부가 늘 따른다. 대립의 형상을 담은 수레바퀴들이 뱅그르르 도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5명의 무용수가 무대 왼쪽 원통형 모양의 세트에 서다. 원통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세상이 된다. 사회 질서 유지에는 기본적인 도덕과 규범이 필수다. 그물이 벼리를 이탈하면 살 수 없듯. 안무자는 벼리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을 이 장면에서 심도있게 그린다. 고슴도치 등에 가시가 난 것처럼 형상화한 모습의 이지희가 나오자 5명은 일제히 경계하기 시작한다. 등에 있는 것을 5명이 뽑는 장면에서 대립감은 상승한다.

무용수 1명이 원통에 있는 천을 몸에 두른다. 물 버금은 꽤나 큰 붓을 여자에게 조금씩 뿌린다. 핍박받는 여자의 모습이 안쓰럽다. 붓을 잘못쓰면 독이 되듯 생명수 역할을 하는 물이 그와 같은 이미지를 창출한다. 남자무용수 1명이 천을 두르고 앉는다. 앞뒤 흐름의 맥을 연결하는 조형성마저 불러일으킨다. 2명이 무대 뒤로 걸어나가며 마무리 된다.

삶을 지탱하는 ‘벼리’는 개인을 넘어 사회, 국가, 세계까지 이어지는 확장성을 지닌다. 파괴력 또한 상당하다. ‘기본과 중심’이라는 메시지를 무대 세트와 오브제의 적극적인 활용, 치밀한 구성이 담긴 안무로 구현했다. 선명한 주제 의식은 안무의 깊이를 더했다. 벼리같은 작품이다.

* 안무_이지희

한양대학교 무용학 박사

가림다댄스컴퍼니 대표, 무브포켓 프로젝트 대표

<그림자나>, <Dots>, <바다와 조각들>, <기억그리기>, <기억의 숲에는 메아리가 없다>, <Moonlight-그을린>, <새벽>, <Stone>, <Stone Vol.2> 외 안무 다수

관객과 리뷰 주최 PAF 올해의 우수 안무작(2019)

한국현대춤협회 주최 한국현대춤작가 12인전 관객평가단 최우수작품상(2019)

충북무용협회 주최 충북무용대상 예술상(2017)

한국무용협회 주최 전국무용제 안무상, 개인 연기상, 단체 은상(2017)

강동아트센터 주최 GDF 대학무용제 그랑프리(2015)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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