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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객 문현 명인이 호호(呼呼)불며 전해 준 반창고(反唱考)<가객 문현이 들려주는 정가공연 반창고(反唱考)Ⅱ>

의관을 정제하고 반가부좌로 앉은 한 교양인(관료, 문인, 선비)이 그날 인상 깊었던 일을 시문으로 기록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이를 가창(歌唱)한다. <가객 문현이 들려주는 정가공연 반창고(反唱考)Ⅱ>의 진행자 현경채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정가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이 오늘 낮 공연장 근처에 고궁을 산책하는 동안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지인들과 가을고궁의 인상(印象)을 기록했듯 옛 선비들도 정가의 범주로 구분하는 가창음악을 그렇게 즐겼으리라고.

 

굳이 첨언하면, 아마도 이때 선비가 기록하고자 한 것은 일거수일투족이 아니라 잠시 중심을 잃을 만큼 인상 깊었던 것에 요동쳤던 자신의 내면에서 지나쳤던 것을 씻어버리면 남는 명료한 어떤 궁극의 가치에 대한 것 아니었을까?

이날 공연되었던 시조 두 작품과 가사 여덟 작품은 작고하신 국가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의 예능보유자셨던 이양교 명인이 갈고 다듬어 제자들에게 전한 가사와 경제시조 작품이다. 이양교 명인의 이수자인 문현은 좀는 평시조(사설을 촘촘하게 엮는 평시조 계통에 해당) <중과 승이>와 가사 <어부사> <춘면곡> <길군악> 그리고 우조지름시조 <석인이 이승>을 가창했고 사이사이 여창(女唱) 송규정, 임소아, 이효선이 <백구사> <황계사> <상사별곡>과 남창(男唱) 한대식, 정승준이 <수양산가> <죽지사>를 가창했다. 반주는 조형석의 대금과 김주남의 해금 그리고 홍석복의 장구로 진행되었다.

 

 

                     가객 문현의 가창은 과히 닿으려 하지 않았다

                                                 "

 

본래 정가 범주의 가창들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음을 지향하지만 사실 가객이 많은 청중 앞에서 그런 심중(心中)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문현 가객의 이력과 조금 마른 듯 품성이 곧아 보이는 외형이 겹쳐져 어쩌면 이 가객은 정가가 지향했던 실상(實像)과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많은 세월 궁구한 정가의 세계가 그를 그렇게 드러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도포에 갓을 갖추고 안경, 옛날에는 오수경이라고 했던가? 의관을 정제하고 나왔을 때는 역사에서 조선 후기 북학파로 분류하는 어느 선비가 불쑥 시공간을 뛰어넘어 무대에 등장한 듯했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적당히 고르고 앉아 차분하게 압도적이지 않게 음의 질서를 조율하는 모습은 가창의 순간을 넘어서 자신을 관조하는 올곧은 선비가 숨을 고르는 듯 무대가 시작됐다. 그러니 그 가창이 웅장하거나 화려하고 기름질 리 없다. 담백하고 담담한 내면의 울림이었다.

함께한 출연자를 굳이 노소로 나누어 보자면 육십을 넘긴 문현 가객은 노(老)에 속한다.

 

편차는 있겠지만 얼추 오십 중반을 넘고 육십을 넘어서 가면 사람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쇠하기 마련이다. 병고와의 투병이 있었다면 더욱 그러할 일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정신적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수양해 왔다면 육신의 쇠약과는 다르게 그가 추구한 가치는 더욱 뚜렷해지는 때여서 노년이 아름다운 것 아닐까?

 

굳이 욕심내어 거스르지 않고 쇠약한 것은 쇠약한 대로 받아들여 끊어질 듯 이어가다가 조금 힘이 받쳐지면 조금 더 내어놓고 그렇게 무심한 듯 문현 가객이 옛사람의 글 자취 위에 올려 드러내는 호흡은 편하게 길게 이어졌고, 문장에 담긴 의미를 넘어 따뜻한 숨을 호호 불어 울려낸 진동으로 객석을 몰아(沒我)의 순간으로 끌어들였다. 공연의 제목처럼 객석에 앉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잔잔한 감동의 반창고가 되었다.

문현 가객이 1월에 큰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6월 <문현의 정가공연-반창고Ⅰ>을, 그리고 강릉 선교장 열화당에서 열었다는 <300년 한옥에서 만나는 선비의 노래>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 <반창고> 공연을 해낼 만큼 건강을 찾은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아마도 40여 년 호흡을 가다듬어 온 저력이 아닐까. 극장 밖을 나왔을 때 한낮의 번잡함이 잦아든 창덕궁 앞 서울 돈화문국악당 작은 마당에는 조금 전 공연장 안에 충만하고 편안했던 분위기만큼의 가을밤이 낙낙히 깊어 있었다.

 

글_지기학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사진_안재경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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