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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_5] 아우성처럼 쏘는 해파리의 음악 [Born by Gorgeousness]
  •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 승인 2021.08.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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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요즈음의 한국 전통음악인들에게는 강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 살아남기 위해 변해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생활에서 한국 전통음악을 자주 듣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국악방송이 있고, TV 국악 프로그램도 있고, 서울에 전문 공연장도 여럿 있지만, 전통음악은 듣는 사람들만 듣는지 오래다. 전통음악을 하는 이들, 특히 지금 전통음악을 배우고 음악을 업으로 이어가려는 젊은 음악인들의 플레이리스트조차 BTS, 두아 리파(Dua Lipa), MSG 워너비 같은 뮤지션들의 최신 히트곡들로 채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다른 음악과 만나고 해외로 나아간다. 고래야, 악단광칠, 씽씽, 이날치, 잠비나이, 추다혜 차지스 같은 팀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명백하다. 알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하던 대로, 학교에서 배운 대로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자신의 감각부터 전통음악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누가 주목받고 누가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지를.

게다가 한 번 만들어진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길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소문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물론 어떤 이들은 전통을 굳건하게 지킬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오늘의 삶과 만나야 한다. 오늘의 방식을 품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의 음악이 될 수 있다. 의미를 강변한다고 다수가 취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해파리의 음악과 시도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해파리는 전통음악을 전공한 혜원(프로듀서/인스트루먼트)과 민희(보컬)가 결성했다. 2021년 1월과 3월, 2곡씩의 싱글을 발표한 후, 5월에 다섯 곡의 EP를 상재했다. 종묘제례악에서 뽑아낸 8곡을 재구성해 다섯 곡으로 정리한 음반 [Born by Gorgeousness]는 종묘제례악을 활용했다는 사실과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매만졌다는 점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를 올릴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한국 전통음악 가운데 정악의 최고봉이다.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음악은 유교국가 조선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음악으로 떠받친 후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궁궐 밖에서는 이따금 연주될 따름이다. 그런데 한국 전통음악을 전공한 혜원과 민희는 종묘제례악에 내재한 음악의 매력을 잊지 않았다. 제례의 순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존재했던 음악은 기실 인간의 손길로 만져지고, 인간의 호흡으로 다듬어져 필연적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형이상학적 기원과 질서가 높고 정결한 음과 박으로 울려 퍼지며 압도할 때, 해파리는 그 앞에 머리 숙이면서도 이제 이 음악조차 다시 쓸 수밖에 없다고 작심한 듯하다.

실제로 [Born by Gorgeousness] 음반은 가부장제 사회의 제사에서 늘상 배제 당했던 여성의 연주와 노래로 종묘제례악을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종묘제례악에서 조상에게 식찬을 드릴 때 연주하는 <진찬>은 일렉트로닉 비트를 전면에 내세워 긴장감 있게 이어진다. 한없이 고아했던 원곡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선언은 첫 곡부터 불온한 기운을 발산한다. <귀인-형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꿈틀거리는 베이스 기타의 리프를 깔고 연주하는 음악은 경건하면서도 불안하다. 가볍게 춤을 춰도 좋을 만큼 댄서블한 리듬 위에서 민희의 노래가 흐르고, 전통악기와 현대의 사운드가 겹쳐질 때, 종묘제례악의 형태와 실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해파리의 음악은 순종과 모반을 동시에 겨냥한다.

반면 원곡의 흐름과 유사한 방식으로 펼쳐지는 <희문>은 영롱한 공간감을 불어넣는 방식을 선택했다. 영적인 울림을 자아내는 사운드 메이킹은 원곡에 가장 가깝게 서 있다. 종묘제례악에서는 춤을 추는 <소무-독경>은 유려한 원곡의 흐름을 완전히 버리지 않지만 섬세함과 불온함을 리드미컬하게 혼재시킴으로써 해파리의 댄스음악으로 거듭난다. 욕망을 완전히 제거한 음악에서 욕망을 부각시킨 음악으로 뒤바뀐 해파리표 종묘제례악 역시 간절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제상에 놓인 고기와 과일을 거두고 신을 보낼 때 연주하는 <철변두-송신>은 아련하고 아득하게 음반을 마무리 한다. 잇고 뒤흔든 음악은 언제 그랬나는 듯 끝나지만, 이 음반을 듣고 나면 아무리 빛나는 과거라 해도 전복되는 것이 숙명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반드시 더 무너져야 할 시대, 그러나 내일이 불안한 오늘의 음악이 아우성처럼 도착했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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