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 4] 레인보우99의 남다른 다작

[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 4] 레인보우99의 남다른 다작RAINBOW99의 정규 9집 [물의 순환 / THE WATER CYCLE]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승인 2021.06.3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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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때마다 신기한 뮤지션이 있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뮤지션 레인보우99이다. 자신이 주도하거나 주도적으로 참여해 만든 정규 음반이 무려 20장이기 때문이다. 2006년에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15년 차인 그는 해마다 1장 이상의 새 음반을 발표하는 셈이다. 다들 알고 있듯 정규 음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곡을 써야 하고, 연주해야 하고, 녹음해야 한다. 발표하고 홍보해야 한다. 이 사이클이 돌아가는데 대개 2~3년은 걸린다. 그런데 거의 매년 음반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창작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는 의미이다. 뜨거울 뿐 아니라 곡이 계속 나온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곡을 발표하고 싶어도 곡이 안 나오면 발표를 할 수 없다. 연주와 녹음이라는 과정도 수행해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레인보우99가 이렇게 많은 음반을 발표할 수 있는 건 레인보우99가 기타리스트이고 작곡가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이 쓴 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고 미디 프로그램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기술의 발전 덕분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레인보우99가 이렇게 많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능력과 기술의 도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레인보우99는 음악을 만들 때 주저함이 없다. 인기가 많은 뮤지션이 아니어서 회사의 A&R팀이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 있지만, 사실 그는 매번 자신을 강하게 때린 무언가를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데 충실할 뿐이다. 그는 상업적 성공이나 캐릭터 구축을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그 순간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노래하고 싶은 것을 노래할 따름이다. 그는 자신이 꽂힌 대상과 순간에 충실하고 정직한 예술가이다.

예술가는 의례 그렇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현대의 예술을 모르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는 지속가능한 예술가 생활을 위해 작품을 미리 기획하고 연출한다. 전문 기획사에 소속되어 매니지먼트를 받고 소셜미디어를 관리한다. 물론 레인보우99라고 아무 생각 없이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달 가보지 않은 지역에 찾아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그 곳에서 받은 인상을 즉석에서 작곡하고 기록해 음반을 발표하는 뮤지션은 드물다. TV 프로그램에서 동두천 이야기를 보고 동두천에 홀려 동두천 곳곳을 뒤지고 다닌 다음 동두천을 주제로 한 정규 음반을 발표한 음악가는 아마 그뿐 일 것이다. 레인보우99는 우리가 상상하는 예술가, 예술이 산업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에 형성된 예술가의 관념을 지키고 있는 예술가에 가까워보인다. 심지어 그의 외모 역시 그렇다.

그렇다고 그의 작업 방식이나 작업량 때문에 레인보우99를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발표한 음악이나 그가 결합한 팀의 연주가 인상적이었고 좋았기 때문이다. 포크, 일렉트로닉, 드림팝, 록 장르를 두루 소화하는 레인보우99의 음악은 대체로 결이 곱고 서정적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듣는데도 어려움이 없다. 가사가 없을 뿐,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테마는 선명하다. 제목을 확인하고 음악을 들으면, 듣는 이들이 경험했던 사건과 풍경들이 레인보우99의 경험과 대비된다. 그가 경험했던 오름과 내가 경험했던 오름, 그가 경험한 여름의 화성과 내가 경험한 화성이 겹쳐졌다가 사라진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그의 경험을 유추하고, 그의 경험과 음악에 비추어 나의 경험을 복기한다. 아직 만나지 않은 시공간과 경험을 상상하기도 한다.

대체로 현실에 존재하거나 경험했던 일들을 음악으로 재현하지만 가장 최근에 발표한 음반 [물의 순환]은 다소 추상적이다. 제주도에 머물며 가장 많이 바라보았던 물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꺠닫고 만든 음반의 제작과정은 역시나 레인보우99답다. 음반을 들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의 존재 방식과 성질, 그리고 흐름이 흐르듯 펼쳐진다. 샘과 바다, 파도와 구름을 오가고,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 물의 흐름은 생명의 연속처럼 솟고 출렁이고 내리고 이어진다. 곡에는 그 순간마다의 드라마가 있다. 레인보우99는 생동하는 물의 에너지를 포착한다. 정해진 모양이 없으며, 곳곳에 있고, 존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계의 근원으로 신비한 대상 앞에서 놀랍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두렵게 하고 때로는 고요하게 하고 때로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대상을 경외하지 않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곡들마다 환상적인 여운이 묻어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코로 냄새 맡는 대상이 귀로 옮겨진다. 귀로 보고 귀로 발견한다. 음악을 들었을 뿐인데 잠시 다른 세계에 머문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