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식 안무 그림자. 나. 그리고 허기진 의자

공간사랑에서 국립극장까지 40년의 공존은 시간과 공간을 무대에서 직조시킨다. 1980년 창단된 가림다댄스컴퍼니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단체이다. 이번 ‘공존_가･림･다 흔적(痕迹)을 남기다’(2021.3.12.~13,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난 시간들의 예술적 흔적을 소중히 보듬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가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된 시간이었다. 40주년 기획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8명의 안무가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예술적 고민으로 임했으리라 본다.

손관중_검은 호흡

1, 2부로 나뉘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의 첫 테이프는 예술감독으로 있는 손관중 교수의 안무작 ‘검은호흡’이다. 2002년 초연작인 이 작품엔 손관중과 강수빈이 호흡을 맞췄다. 무대 막이 열림과 동시에 강한 무대 아우라가 전달된다. 숙명과 운명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둠’에 대한 안무자의 고독한 지성이 듀엣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이 작품은 내적 움직임이 두 명의 호흡속에서 주고받을 때 극대화됨을 알 수 있다.

이어진 작품은 ‘동행’. 전혁진 안무작으로 2012년 초연됐다. 안무자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나 또는 우리와 진정한 ‘동행’을 하고 있는 얼굴 모르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편지이다”라고 말한다. 그 편지의 시작은 무음악속에서 권재헌, 윤혁중 두 명의 남자 무용수가 공간의 에너지를 모으며 시작한다. 정형 속 자유로움을 발레를 보는 듯 잘 담아냈다. 두 명이 같은 동작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동반자의 길에 대한 친절한 제시라 할 수 있다.

이지희 안무_기억의 숲에는 메아리가 없다

2016년 초연된 현 가림다댄스컴퍼니 대표인 이지희 안무 ‘기억의 숲에는 메아리가 없다’는 기억과 공간 사이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또 하나의 여정을 만든다. 군무가 뿜어내는 숨죽인 활달함이 인상깊다.

김남식 안무_그림자, 나, 그리고 허기진 의자

개성미와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김남식은 2011년 초연작 ‘그림자. 나. 그리고 허기진 의자’는 처연한 슬픔에 싸인 의자를 동여맨다. 안무자의 평소 성찰 과정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건을 쓴 채 부러진 의자 다리 하나를 감싸주는 장면과 영상 속 야외에 널부러진 의자들의 모습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의자는 인생이다. 그 인생을 의자에 담았다.

박종현 안무_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박종현 안무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2008년 초연)은 위트가 넘친다. 그 유쾌함은 기분좋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삶의 유기성, 조화와 존속은 그 속에서 경계를 넘나든다. 공생의 노래다. 영민한 안무작이다. 이어진 작품은 2019년 초연된 문지애 안무 ‘Homo Ruah(히브리어로 숨결, 입김을 뜻함)’. 무대 왼쪽에서 4명(권유나, 윤혁중, 장준혁, 문지애)의 무용수가 등장해 나간다. 입김을 서서히 불어내는 듯하다. 예리한 시선으로 감각적으로 처리한 2인무가 인상깊다. 또 하나의 숨결을 오마주하다.

2007년 초연된 박은성 안무의 ‘나는 나를 그리워하며...’는 군중 속 고독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박은성의 전성기 모습도 엿볼 수 있었던 이번 작품은 그림, 영상, 오브제를 공감각적으로 배치, 재배치하는 안무와 움직임을 통해 구현했다. 나에 대한 그리움에 마침표와 물음표를 동시에 찍었다. 마지막 작품은 이정연 안무의 ‘붉은 나비, 고백...’(2005년 초연). 무대 좌우 후방에서 전방으로 무용수들이 나온다. 내가 살아 있음을, 영원한 고통을 노래한 이 작품은 군무진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넘친다. 역동적 고백이다.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림다댄스컴퍼니 창단 40주년 기념 기획공연은 40년 역사 속에서 함께한 대표작부터 현재작까지 촘촘히 시간의 문살을 공간에 채웠다. 공존의 힘이 아름다운 이유다.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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