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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에 답한 시간_<유장일발레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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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랑의 묘약은 강력하다.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말로 이 묘약의 강력한 효과를 중세 문학 작품에선 표현하고 있다. 묘약만큼이나 강한 무용 미학을 보여준 유장일발레단의 ‘트리스탄과 이졸데’(2021.1.9.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트리스티스(슬픈 회귀)’란 부제를 달고 새해 무대를 활기차게 연다.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는 그동안 여러 장르로 변신을 시도했다. 말 그대로 OSMU(one source multi use)다. 이 공연의 원전은 이야기다. 중세 유럽의 최대 연애담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켈트인의 옛 전설을 소재로 스토리텔링 됐다. 사랑과 죽음은 아름답고 때론 강렬하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1865년 6월 뮌헨 궁정극장에서 총 3막의 악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기존의 오페라와는 달리 인간 심리의 내면세계를 파고든 점이 큰 특징이다. 바그너 이전에는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가에타노 도니체티는 이 중세의 트리스탄 전설을 패러디한다.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특히 도니체티 오페라의 대본은 원래 프랑스 작곡가인 다니엘 오베르가 작곡했던 외젠 스크리브의 대본 ‘미약(Le Philtre)’에 기반하고 있다. J.콕토는 이 이야기를 ‘영원한 회귀(回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안무자는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간다. 드라마 발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에 대한 관점을 현대인의 사랑, 오늘날의 사랑에 대해 시선을 확장시킨다. 인스턴트와 같은 현대인의 사랑을 연민이란 눈으로 연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의 묘약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과 답을 동시에 준 시간이다. 막 올라가기 전, 음악이 작품 전체 느낌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전달력 강하다. 음향에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 역력하다. 무용공연 최초 5.1채널의 힘이 느껴진다. 이는 객석에 소리의 사각지대를 없애는데 효과가 크다. 마치 영화관에 온 듯한 느낌이다. 무용의 시각성을 청각성으로 치환하고 증폭해 공감각성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작품이 시작되면 손관중이 등장한다. 특별출연의 존재감을 일순간 보여준다. 슬픔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트리스티스(김한새)를 데리고 나간다. 연민의 시작이요, 엇갈린 운명의 숙명을 단적으로 담아낸다. 복선이 투영된 프롤로그 처리가 영민하다. 입체감 있는 음악 속에 무대 후방에서 군무진 서서히 나온다.

청년 트리스탄(허서명)은 백부인 왕 마르크(이재우)의 명령으로 아일랜드와의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한다. 왕의 신부가 될 이졸데(김민정)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온다. 하지만 사랑의 미약(媚藥)은 이들을 거역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버린다. 격정의 파도는 넘실대고 또 넘실댄다. 엇갈린 운명의 결정판은 결혼식이 제공한다. 슬픈 결혼식이다. 사랑을 이어가야만 하는 사랑의 운명 때문이다. 트리스탄의 슬픔은 면사포를 품에 감싸 안을 때 배가된다.

블랙 톤의 의상 입은 남녀 5쌍의 군무(박관우, 용 기, 이승현, 원진호, 안성준, 이원설, 박하은, 김아림, 이소정, 이지현)가 앞일을 예감케 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파드되(pas de deux)는 발레의 묘미를 상승시킨다. 사랑스런 2인무가 싱그럽게 펼쳐진다.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감정 표현 후,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군무로 다시 한 번 풀어내는 기법은 주효했다. 운명 공동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을 지키고자 죽음을 함께한다. 마르크 왕은 그들을 용서한다. 회한의 눈물 가득하다. 슬픔의 춤이 공간을 그린다.

커플 나간 후, 컨템포러리적 자유함이 넘실댄다. 10명의 군무가 피어내는 희망의 메시지다. 무대 중앙 연리지(連理枝)가 서있다. 뿌리는 다르지만 서로 엉키면서 자라나는 연리지. 상징성이 크다. 나무는 슬픈 회귀의 느낌을 준다. 동시에 또 다른 삶의 전경으로 전환시킨다. 봄의 전경이다. 생명이 다시 움튼다. 연리지에 매달린 군상은 숭고하다. 죽음의 찬미요, 사랑의 찬미다.

이 작품은 2016년 제37회 서울무용제 대상과 남・여 연기상 수상작 ‘트리스티스(슬픈 회귀)’를 확장 발전시킨 작품이다.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레퍼토리 선정작으로 지원사업의 취지와 목표를 정확히 달성했다. 레퍼토리로서의 가능성, 확장성도 동시에 보여줬다. 이번 무대에선 주역과 군무 모두 가릴 것 없이 역량이 출중하다. 프로필을 다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량을 갖춘 출연진의 움직임과 앙상블은 연리지처럼 견고하다. 주인공에서 군무로 이어지는 춤의 패턴 구사는 안무자의 눈높이를 보여준다. 풍성한 사운드, 깔끔한 조명 처리 또한 클래식함과 모던함을 동시에 선사하는데 일조했다.

사랑의 묘약을 객석에 유려하면서도 묵직하게 던져준 ‘트리스탄과 이졸데’. 다음 춤의 묘약을 손꼽아본다.

 

안무자 유장일

유장일

유장일발레단 예술감독

(사)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 이사

(사)한국프로발레협회 상임이사&사무국장

충남대 무용학과 강사

서울발레시어터 주역무용수 역임

백석예술대, 강원대 강사 역임

제37회 서울무용제 경연부문 대상 수상

2016년 대한민국무용대상 베스트7 선정

문화부장관상 수상

한양대학교 무용학 박사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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