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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다_오스왈도 과야사민국내 첫 전시,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전,
(분노의시대)_펜타곤에서의 회의I~V (Meeting at the Pentagon I~V) 캔버스에 유채, 각 179x179cm, 1970

20세기 초는 제국주의의 팽창이 불러온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발발로 유럽 및 아프리카, 러시아 등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는 격동의 시기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에스파냐)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소련 등이 개입한 국제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을 예고하며 주변 국가들이 가세해 스페인 전 지역의 황폐는 물론 60만 명이 희생된 대 참사였다. 앙드레 말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네루다, 조지 오웰 등 세계적 지성과 문호 들도 총을 들고 에스파냐 전선으로 향했고,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가 탄생한 배경도 이 전쟁의 참상이었다. 이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제 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으며 목도한 인간의 폭력성을 작품에 담아낸 화가가 ‘에콰도르 국민화가’로 불리는 오스왈도 과야사민(Oswaldo Guayasamin 1919-1999)이다.

 

Oswaldo Guayasamin 1919-1999

 ‘라틴아메리카의 피카소’로 불리며 에콰도르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국보급 화가 과야사민은 에콰도르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정치, 사회현실 비판과 가난한 노동자, 원주민, 빈민, 흑인 등 사회적 약자에 가해지는 불의를 고발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로 표현했다.

 

과야사민은 1956년 제 3회 <스페인 바르셀로나 비엔날레>에서 그랑프리(Grand Prix of Spain)를 수상, 1957년에는 제 4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1등상을 수상해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선정됐다. 1978년 스페인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워싱턴, 상트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프라하, 로마,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르샤바 등 미국과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에콰도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해외 반출이 불가능하다. 1991년에는 에콰도르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 상(유헤니오 에스페요 상/Premio Eugenio Espejo)을 수상한 바 있다. 과야사민은 1976년 자신의 작품을 에콰도르에 기증하고 에콰도르 키토에 과야사민 재단을 설립했다. 과야사민이 생에 남긴 유작은 페인팅 총 5800여 점, 조각은 150여 점으로 기록되며, 과야사민재단에서 운영하는 과야사민 미술관에 총 250여 점의 유화와 1800여 점의 드로잉이 소장되어 있다.

사비나미술관은 국내 최초로 에콰도르 출신의 작가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전시를 개최하며 유화작품과 드로잉 등 과야사민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중 시대별 주요작품 89점을 소개한다.

2020.12.19.-2021.1.22. 사비나미술관

 

 

 

불의의 시대에 맞서다

국내 최초,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

     : 애도-분노-온유의 시대-시기별 대표작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92x62cm, 1950

 

“나는 신발이 없다고 많이 울었다. 발이 없는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

가난하고 차별받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상처와 아픔, 민중의 고뇌와 분노, 억압받고 궁핍으로 살아가는 불평등한 사회가 싫었다.

차라리 쿠바혁명의 가치를 옹호하고 열렬히 지지하는 게 나았지.”

- 1953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와의 대화 中에서

 

 

사비나미술관은 에콰도르 출신 작가 오스왈도 과야사민(Oswaldo Guayasamin)의 전시를 국내 최초로 개최한다.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초기 작품 뿐 아니라 <애도의 길>(1940-50년대), <분노의 시대>(1960-70년대), <온유의 시대>(1980-1999년)의 각 시기별 대표작을 포함한 주요 유화, 드로잉, 수채화 89점과 영상 자료 등이다. 과야사민은 전 생애에 걸쳐 사회적 약자에 가해지는 불의를 고발하고 민중의 문화와 정체성, 종교 등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로 섬세하게 표현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에서 태동한 전위적, 혁신적 미술운동인 표현주의와 입체주의 개념을 흡수하여 민중주의 미학을 완성하는 등 다층적 예술세계를 구축한 업적을 남겼으며, 조형적 발언의 폭과 깊이는 라틴아메리카 작가 중 단연 독보적이다. 그의 작품은 에콰도르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국가 정체성의 의미와 상징성을 지녔으며 애국심과 자긍심을 높이고 공동체 의식을 결속시켜 국민 대통합에 기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은 전시를 통해 과야사민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며 인종에 대한 차별과 핍박의 시대상에 맞선 과야사민의 철학과 태도를 엿보고자 한다.

 

시기별 작품으로 보는 과야사민의 생애

전 생애를 사회 정의를 위해 맞선 과야사민의 예술가적 정신과 태도, 그리고 표현 형식에 초점을 맞춰 그가 국민화가로서 살아온 생애를 시기별 전시작품을 통해 소개한다. 작품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대부분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되는 정치적 압제와 인종주의, 가난, 계급 분열을 포착한 것으로 약자를 차별하는 것에 대항해 작품을 제작했다. 음울한 색채, 위축된 사람들의 무표정함 등을 담아내며 빈곤한 토착민들에 대한, 잔혹하고 부정직한 사회의 비정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과야사민의 초기 작품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를 방문한 경험으로 3,000점의 스케치를 남겼고 이를 바탕으로 혼혈, 토착, 흑인의 삶과 전통을 대표하는 "애도의 길" 시리즈를 제작해 표현주의에서 입체주의로의 회화 형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1990년대까지 이어오는 과야사민의 작품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상처와 아픔, 핍박과 고통의 참혹함과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 평화, 순수함이 공존한다. 이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전쟁과 테러의 위험과 고통,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과야사민의 예술가적 태도와 의미, 그리고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2층 전시실에서는 유화 40점이 ‘분노의 시대(1960-1970년대)’를 표현한다. 3층 전시실에는 유화 15점과 드로잉 및 수채화 34점을 통해 ‘애도의 길(1940-1950년대)’과 ‘온유의 시대(1980-1999년)’에 대해 시사한다. 4층 전시실에는 사진 및 수공예품을 통한 에콰도르(‘에콰도르: 네 개의 세상’)를 소개한다.

 

 

● 주요 전시구성

전시공간

시대 및 장르

전시 작품 수 / 총 89점

2층 전시실

분노의 시대(1960-1970년대)

유화 40점

3층 전시실

애도의 길(1940-1950년대)

온유의 시대(1980-1999년)

유화 15점 (애도의 길 9점, 온유의 시대 6점)

드로잉 및 수채화 34점

4층 전시실

에콰도르: 네 개의 세상

사진 및 수공예품을 통한 에콰도르 소개

아카이브

영상자료

과야사민 생전 인터뷰
베레니세 과야사민 및 파블로 과야사민 인터뷰

작가자료

작가연보 및 관련자료 책자

● 시대별 주요작품

애도의 길 (1940-1950년대)

1946~1952년 사이에 제작된 <애도의 길>은 과야사민의 첫 연작이다. 이 시리즈는 과야사민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등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직접 여행한 후 제작됐다. 제목으로 사용된 ‘애도의 길’은 케추아족 언어로 ‘Huacayñán’라고 표기된다. “다시는 서로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금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아는 두 친구, 혹은 연인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헤어짐을 받아들일 때 사용된다. 그리고 이때 차마 서로의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함으로써 눈가에 촉촉이 고인 눈물을 뜻하기도 한다. 이 연작은 남아메리카 원주민, 즉 메스티소 후예의 문화를 담고 있다. 과야사민은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그들이 겪은 기쁨과 슬픔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파업(The Strike) 캔버스에 유채, 139x198cm, 1942

 

 

분노의 시대 (1960-1970년대)

‘분노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20세기 전반기는 인간을 향한 인간의 폭력으로 가득한 시대였다. 1919년 태어난 과야사민의 어린 시절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였다. 이후 과야사민이 겪은 폭력에 대한 기억은 스페인 내전과 곧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으로 이어졌다.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강제수용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폭력적 독재로 점철된 코노수르(남회귀선 아래 남아메리카 최남단 지역) 국가에서 벌어진 분쟁, 그리고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76~1981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와 피노체트(Augusto Jose Ramon Pinochet, 칠레의 33, 34, 35대 대통령이자 군인) 같은 독재자에 의해 핍박받는 남아메리카 여러 국가에서의 참상은 과야사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인간의 폭력이 극에 달한 불행한 시대였고, 과야사민은 그때의 기억을 ‘피의 강’이라고 불렀다. 이 시기의 작품은 가장 표현력이 풍부하면서도 정치적인 성격이 짙게 풍긴다.

펜타곤에서의 회의I~V (Meeting at the Pentagon I~V) 캔버스에 유채, 각 179x179cm, 1970

‘분노의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가 <펜타곤에서의 회의> 시리즈다. 가로·세로 179x179cm에 이르는 대형 정사각형 캔버스에 군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인물 한 사람씩이 그려져 있다. 각각의 캔버스에 그려진 이 다섯 명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성격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 인물이 전시장에 함께 걸려있는 모습은 마치 그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회의 모습은 유쾌하지 못하다. 인류의 목숨과 미래를 그들의 손아귀에 움켜잡고 결정짓기라도 하듯 불안한 광경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인물은 독일군 장교다. 무고한 유대인을 수용소에 몰아넣고 독가스로 무차별 학살한 죽음의 광기(狂氣)를 표현했다.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듯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제스처를 보여주는 두 번째 인물 역시 폭력의 상징이다. 마치 오랑우탄 얼굴처럼 우둔하게 묘사된 세 번째 인물은 라틴아메리카의 장군이다. 그는 변화와 혁신,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민중의 염원과 호소를 폭력으로 제압하고 억압하는 독재 권력자의 모습이다. 네 번째 인물은 영문도 모르고 전쟁터로 이끌려가는 젊은이다. 가지런히 모은 그의 두 손은 곧 피로 더럽혀질 것이라는 불행을 예견하듯 붉은색 물감으로 칠해져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인물은 비열한 눈초리로 묘사된 스파이 군인이다.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모자 아래 숨어서 곁눈질로 무엇인가를 염탐하고 의심하는 듯한 눈빛은 비열한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눈물 흘리는 여인들 I~VII (Women Crying I~VII) 캔버스에 유채, 각 145x75cm, 1963-1965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한 과야사민은 37세였던 1956년 제3회 스페인 바로셀로나 비엔날레에서 그랑프리상을 수상한다. 포상으로 받은 상금으로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때 과야사민은 스페인의 여러 가정이 상중(喪中)인 것을 목격한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다시 발발하기 직전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스페인 내전(1936-1939)의 여파로 스페인 전역에서는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었다. 전장에서 사망한 사람은 아버지, 아들, 형, 삼촌 등 대부분 남자였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집안에 남아있던 여성의 삶 또한 남성 못지않게 처참히 파괴됐다. 스페인 민중의 고통, 특히 여성이 겪는 이런 불행을 목격한 과야사민은 검은 상복(喪服)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다. 총 7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 <눈물 흘리는 여인들> 탄생 배경은 이와 같다.

세로 145cm, 가로 65cm 크기인 이 작품 비례 역시 또 다른 연작 <기다림>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상징하는 관(棺) 모양을 암시한다. 그리고 일곱 개로 구성된 작품 수는 일주일을 상징한다. 일주일이 7일인 것처럼 스페인 여인의 눈물과 고통은 일주일 내내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일곱 개의 캔버스에 그려진 여인은 검은색 망토, 즉 상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슬픔과 고통의 순간을 포착한 얼굴표정, 그리고 메마르고 거칠게 표현된 팔과 손가락 묘사에서 과야사민 특유의 회화적 표현능력을 감지할 수 있다.

온유의 시대 (1980-1999년)

노년기에 접어든 과야사민의 작품세계는 이전 경향에 비해 큰 전환점을 보여준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분노, 그리고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던 사회적 메시지는 차츰 사라지고 인간 본연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 대상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어머니로 귀결된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더 나아가 모든 지구의 생명, 그리고 보편적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구현된다. 과야사민은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인류가 지닐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절대적인 희망의 불씨임을 알려준다.

노년기 과야사민의 작품은 과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한 색채와 붓질은 차츰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부드러워졌다. 유화뿐 아니라 수채화를 통해 색채도 따뜻하고 온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온유(Tenderness) 캔버스에 유채, 135x100cm, 1989

 

어머니와 아이(Mother and child) 캔버스에 유채, 105x176cm, 1982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당신을 기억합니다.” 스케치, 판지에 잉크, 46x32.2cm, 연도미상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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