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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버스킹’에게 자유를 허하라!- 기부인 듯, 기부 아닌, 기부 같은 기부
유세움 인천시의원

몇 년 전부터 문화 예술계 전반에 떠오르는 화두가 있다. 그것들이 매번 이슈가 될 때마다 다음은 조금 나아지겠지 라고 기대하지만, 해가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지고 오히려 면역이 생겨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계속 될 것 같은 불안감마저 엄습한다. 문화 예술 종사자를 향한 ‘재능 기부’, 지자체와 관공서들은 앞 다투어 누가 누가 ‘재능 강요’ 잘하나 경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대표적으로 ‘버스킹 공모 및 모집’ 사례이다. 먼저, ‘버스킹’(Busking)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버스킹이 음악의 한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연 예술 행위들 중 한 형태이다. ‘버스킹’은 허가를 받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예술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장소 선택과 장르의 선택은 온전히 ‘예술가’의 의지이고 몫인 것이다. 거기서 팁 박스(Tip Box)를 펼치거나 CD를 판매하는 것도 예술가의 선택인 것이다. 누가 해라, 하지 말아라 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란 것이다. 쫓겨나는 것도 예술가의 몫이요. 관객이 있건 없건 예술가의 몫이요. 갈채를 받는 것도, 야유를 받는 것도 모두 예술가의 몫인 것이다. 곧 예술가 자신이 온전히 주체가 되는 것이 ‘버스킹’이다. 그러기에 요즘 곳곳에 생기고 있는 ‘버스킹 존’이라는 것은 존재 자체가 모순이다. ‘버스킹 페스티벌’, ‘버스킹 경연대회’ 등등 이 모두 모순된 사업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변질된 형태로 쓰이고 있는 ‘우리의 버스킹’은 ‘재능기부’의 또 다른 변종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공공영역에서 ‘버스킹’이라는 공모가 뜨면 이상한 알레르기 반응마저 일으키게 된다. 차라리 ‘OO 거리 공연팀 모집’이라고 표현했으면 나을지 모른다.

2016년, 공연계 종사자였던 필자는 여러 공모 사업을 들여다보다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엔 큰 관심을 두진 않았었는데, 계속 머릿속을 맴 돌더니 기어코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버스킹 존’ 예술가 모집>이라는 공고였다. 그러려니 했었는데, 보면 볼수록 기가 찼다. 공연에 필요한 모든 물품은 예술가가 직접 준비, 공연비용 없음, 음반 판매 금지, 팁 박스 금지, 심지어 공연의 횟수와 시간까지 자율성이 보장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월 1회 공연이라는 의무 사항도 있다. 기가 막혔다. 나는 이 공고를 이렇게 표현했다. “OO광역시가 예술가를 대하는 자세”, 그렇다 예술은 우리가 먹고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절대 가치는 아니다. 음악이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고, 그림 안 봐도 살 수 있다. 공연 안본다고 누가 흉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정작 창작과 생산 주체인 예술가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 모순되게도 지자체들은 너도 나도 ‘문화도시’, ‘음악도시’ 사업 유치에 대한 열망들은 높아만 가고 있다. 음악도시 안에 음악인이 설 곳이 없는 음악도시, 음악도시의 눈치를 보는 음악인들, 도대체 이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이 사업들 안에서도 이 문제들이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고 있다. 2016년 버스킹 존 운영 공모에 이어 2020년을 살고 있는 지금, 수도권 등지에서 출연료 1만 2천원, 3만원, 심지어 전기 지원조차도 안 되는 곳도 있다. 이 금액도 활동보고서를 제출해야 받을 수 있단다. 이제 ‘지원 봉사 보상금’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짜장면 값은 1,500원에서 5,000원이 되었는데, 예술가들의 몸값(필자 예를 들면)은 20년 전 5만원에서 3만원이 되었다. 짜장면 여섯 그릇짜리가 되었다. 그나마 열 그릇에서 네 그릇 마저 빼앗겼다. 이것이 돈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공공영역의 기관들과 종사들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유지하고, 어떻게든 예술 행위를 위한 그들의 치열한 삶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암흑 같은 터널 안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예술이라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순수함과 존귀함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마른 걸레에서 물 짜내듯 예술가들을 짜내지 않았으면 한다. ‘강요’가 아닌 ‘요청’을 해주었으면 한다. 이곳에는 당신의 음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당신의 퍼포먼스를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있어야지 않을까? 무슨 공연인지도 모르고 섭외해서 공연 평을 늘어놓는 것 보다는 말이다. 이제 그만 ‘버스킹’에게 자유를 허하고 그들의 세계로 돌아가게 놓아주길 바란다.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예술은 삶을 춤추게 한다.’, ‘예술은 삶을 흥미롭게 한다.’ 우리는 예술을 이렇게 표현한다. 정작 예술가들은 언제쯤 삶이 풍요로워지고 흥미롭게 춤 출 수 있게 될까? 예술가들이 숨쉬기 힘든 문화 도시와 음악 도시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그 안에서 사람들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을까? 행복한 요리사가 한 요리가 맛있듯, 행복한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다. 최소한 우리 인천광역시에서 ‘버스킹’을 사업화하고 이상한 ‘기부’를 요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유세움(인천광역시의원, 前 공연기획자)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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