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ART 작가
[무브갤러리] 심층적 단상의 추상성 _권순교 작가

칠하고 또 칠하고 벗겨내고 또 벗기고 하는 누드의 아픔은 차리리 고운 껍질을 떼어내듯 아프기보다는 시원하지만 갈수록 깊은 어둠의 알 수 없는 것과 만난다.

누드‘라 이름 짓는 권순교의 서양화 그림은 환희 알 수 있는 알몸의 누드를 감추고 그 속에 담겨있는 것을 칠하면 찾아내고 있는 것과 같다.  알 수 없는 것을 찾아간다는 기쁨이 있고, 그때 나타난 전혀 다른 의미의 누드-알몸 형상이 곧 인간 내지 인간성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쁨이 오히려 역설적인 아픔에서 드러나듯 해체되어 파괴된 물감 자국의 복잡 다나한 형태감은 알몸을 향한, 순수하지만 매우 공격적인 터치로 밝혀진다. 어떤 하나의 진실을 추구하며 찾아가는 구도자와 같은 붓질을 화면에 심층적인 단상에 하면서 기쁨과 그 이면에 숨겨진 아픔의 교차를 하나의 깊이로 몰아가고 있다.

 

권순교의 추상성은 이렇게 알몸-누드-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내포 한 채 하나의 인간성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의 진실 찾기 누드작업의 추상이 단지 그림의 단순한 배합이나 복합적인 붓질의 한갓된 움직임이 아닌 것 들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의미의 인간성 표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박준원(미학박사) 2001

 

권순교 (Kwon Soon Gyo)

 

 

현대미술작가회, 구상작업미술가회

하상선, 구상전, 현대파스텔작가회, 작업전

저서 : 「석고소묘」, 「Drawing」

 

1998 부산미술제조명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전<부산시립미술관>, 대한민국회화제

· 1999 대한미국 수채화 100인 초대전

· 2000 필리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필리핀 국립현대미술관>

2017년 BFAA 국제아트페어 500호 초대전

2018년 이태리 밀라노RHO초대전, 복건성 퓨젠시 국제교류전

2018,2019년 인도 첸나이비엔날레

·

기획초대전·단체전 200여회

 

 

 

·▲주요전시

· 1991 한국청년구상작가회 주간미술.서울신문사 초대전<백상기념관>

· 1992 현대파스텔작가회 창립전<시민회관>

· 1994 구상전 초대전 <운형궁 미술관>

· 1995 서울. 부산. 광주 누드 작가전 <경인미술관>

· 1996 대한민국 수채화 100주년 기념전<서울,대구,부산,광주,전주,강릉>

· 1997 부산구상회화제<시민회관>

· 1998 부산미술제조명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전<부산시립미술관>, 대한민국회화제

· 1999 대한미국 수채화 100인 초대전

· 2000 필리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필리핀 국립현대미술관>

2017년 BFAA 국제아트페어 500호 초대전

2018년 이태리 밀라노RHO초대전, 복건성 퓨젠시 국제교류전

2018,2019년 인도 첸나이비엔날레

·*기획초대전,단체전 200여회

 

·▲개인전

1.200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연구소 개인전

2.2007년 고양 아트페스티벌 개인 부스전

3.2007년 부산 피카소화랑 개인전

4.2016년 부산아트페어 개인 부스전

5.2017년 부산 다브갤러리 초대전

6.2017년 BFAA 국제아트페어 개인부스전

7.2019년 BFAA 국제아트페어 개인부스전

8.2019년 BIAF 국제아트페어 개인부스전

 

·▲지난미술활동단체

하상선, 구상전, 현대파스텔작가회, 작업전

 

·▲현 미술활동단체

현대미술작가회, 구상작업미술가회

 

▲저서 : 「석고소묘」, 「Drawing」

 

- 무의식 속에서 찾은 생명의 본 모습 -

: 권순교 개인전에 부쳐

 

권순교 화백의 그림은 얼핏 보면 무척 어렵다. 문외한의 눈으로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눈치 채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의 작품은 드라마 제목처럼 <보고 또 보고>해야 한다.밖에 없다.

그것도 열린 마음의 눈으로 권화백의 그림은 난해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그리겠다는 의도로 붓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전광석화 같은 시상이 떠오른 시인처럼, 확철대오한 선처럼, 한 걸음에 일필휘지하고 만다. 그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끙끙거리고, 지웠다가 다시 칠하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통해 어떤 정치 경제 사회적 이미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세속적 댓가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인간과 자연 , 다시 말해 생명과 우주의 본래 모습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권순교는 어쩌면 대단히 무모한 도전을 하는지 모른다. 노자를 닮으려고 애쓰다 로는 부처를 흉내이다. 그가 탐착하는 소재가 물과 인체, 그리고 그 속에든 불성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상선약수>라 하여 물 흐르듯 사는 것이 바로 도라고 하였다. 석가모니도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중생인 당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날 자연과 인간은 예전과 달라 오염되고 비뚤어졌다. 구부러진 것을 바로 펴고, 뻣뻣한 것을 부드럽게 만들어 제 자리로 돌려주는 게 권순교의 숙명인가 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해체 했다가 재구성하고, 풀었다가 다시 결합시킨다.

작가의 머리는 벌써 반백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아직 동안이다. 언제나 말없이 미소를 머금는다. 작가은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재물이나 명예, 권세라는 세속적 유혹에 초탈한 자유인이 아니면 아무도 다달을 수 없는 경지다.

권순교는 작품 속에서 동심을 회복했으면 한다. 때로는 부처와 노자의 자유인의 경지를 흠뻑 맛볼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없는 복락일 것이다.

 

2007.11.8., 박병곤(부산일보 논설위원)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수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