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어린이 해방 운동 역사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질의응답을 받았는데, 청중 한 분이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에 선포한 ‘어린이 해방’ 100년이 가까워 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는 지 말해달라고 했다.

곧 당시 선언한 ‘윤리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과 ‘경제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상당히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한 마디로 어린이 해방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윤리적 압박에서 해방되었다고 전혀 볼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시 장유유서를 비롯한 조선 유교 윤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어른이 어린이를 소유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에 대한 어른들의 환상과 두려움을 어린이들한테 그대로 강요하고 있다. 그 압박이 얼마나 심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 18세 미만 어린이 자살 비율이 10년 넘게 일등하고 있다.

경제적 압박에서도 전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 꼴찌다. 우리나라는 1.21명(2014년 기준)으로 회원국 평균치 1.68명보다 한참 밑돈다. 2026년에는 5명 가운데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로 들어가고,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살) 100명 대 부양인구(노인과 어린이)가 101명으로 늘어난다. 이 정도 되면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 더 이상 미래가 존재할 수 없는 사회로 치닫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저출산국이 된 가장 큰 까닭은 경제적 억압 때문이다. 아기를 임신과 출산으로 부모가 경제 활동 제약을 받게 되고, 육아 기간 경제 부담이 큰 억압으로 작용한다. 겉으로는 부모가 억압을 받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아이들이 억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못 쓰는 까닭이 직장 눈치 69%고 경제 부담이 27%라고 한다. 작장 눈치는 경제 활동에 대한 간접 억압으로 나타나고, 경제 부담은 직접 부담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현대 어린이들도 간접이나 직접으로 옛날 장유유서와 같은 어른 중심 윤리에 억압당하고 있고, 어린이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지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 활동 제약과 경제 부담 때문에 임신과 출산 자체를 포기할 정도로 압박받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임신 휴가와 출산 휴직 때문에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고, 3년 육아 휴직해도 복직을 보장받는 교사 출산율이 다른 직업군보다 훨씬 높은 까닭이 다른 직업군에 견주면 경제적 압박을 거의 안 받기 때문이다. 곧 다른 직업군도 임신과 출산과 육아 기간에 경제적 압박을 받지 않으면 당장 출산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 필요한 어린이 해방은 부모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할 때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일이다. 곧 어린이가 이 땅에 태어날 자유와 권리를 소중하고 지켜주고, 주변 어른들이 모두 아주 귀하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가 이 땅에 태어날 자유와 권리를 억압 받지 않는 어린이 해방 세상, 헌법 제31조에 규정되어 있듯이 자기 능력에 맞게 평등하고 평화롭게 교육 받을 권리를 보장 받는 어린이 해방 세상, 어린이들이 참된 어린이 문화를 누리면서 어린이답게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 받는 어린이 해방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어린이 해방은 시민 해방, 계급 해방, 여성 해방을 넘어 인류가 완성해야 할 인간 해방이 나갈 길이다. 어린이 해방 세상이 되어야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를 누리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주영 : 어린이 문화 연대 대표,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공동대표, 『어린이 문화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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