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전준엽의 미술생각
농부, 영웅의 반열에 오르다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The Sower, Jean-Francois Millet, 101 x 82.6 cm, 캔버스에 유채, 1850년, 보스턴미술관 소장

 

 

인류사를 이끌어온 실질적인 세력이었지만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농부를 위대한 대상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인간이 농업기술을 발명한 것을 제1의 물결로 보았다. 인류 문명에서 큰 변혁과 발달을 가져오게 된 첫 번째 혁명적 전환점이라는 분석이다. 인류가 농업기술을 이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대략 1만 년 전 쯤으로 보고 있다. 농업의 시작은 인류 문명의 혁명임에 분명하다. 각종 도구의 발전은 물론 식량의 안정적 수급으로 인구가 늘어났다. 계획을 세우고 일을 도모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규모, 이를테면, 토지의 면적이나 추수되는 곡식의 양 같은 것을 계산해내고 소통하는 능력도 생겼다. 실제 사물이나 그것의 크기, 규모 등을 가늠하는 추상적 사고는 숫자나 기호, 문자 등의 발달을 불러왔으며, 이를 매개로 거래하는 경제 개념도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가 한 곳에 모여 살게 되면서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국가가 탄생한다. 농업을 기반으로 인류사를 장식하는 고대국가다. 토플러가 주장한 제2의 물결인 공업기술이 나오기까지 자그마치 9700여 년을 이어온 셈이다. 이처럼 인류사의 기나긴 세월을 이끌어온 주역은 농부다. 그런데 역사에서 농부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서양에서는 노예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고, 동양에서도 하늘 아래 가장 큰 근본이라고 치켜세웠지만 피지배 계급의 처지는 여전했다.

프랑스 사실적 자연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가 그린 농부는 농업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통쾌한 작품이다. <씨 뿌리는 사람 The Sower>으로 발표한 이 작품은 당시 사회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파종하는 농부를 그렸는데, 마치 진군하는 혁명군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삼색기 색깔인 빨강 파랑 하양의 옷을 입은 농부다. 프랑스 혁명 후 불확실성에 빠져 있던 시대였기에 사람마다 이 그림을 해석하는 각도가 달랐다. 혁명 주도 세력은 삼색기로 치장한 농부가 힘찬 모습으로 씨를 뿌리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을 상징한다며, 지평선 너머의 밝은 빛이 혁명이 보여주는 밝은 미래라고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반면 구질서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는 보수 세력은 혁명 후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피폐한 농촌 현실을 들이대며, 시대를 왜곡하고 혁명을 미화시키는 불온한 그림이라고 비판을 보냈다.

그러나 밀레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야망도 없었고, 속물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래서 정치적인 견해도 뚜렷하지 않았지만, 설사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 해도 이를 그림으로 발언할 만한 배짱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소박한 농촌 생활에 익숙했고, 농사를 지으며 그림 그리는 화가였기에 농부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삶의 바탕이 되는 농사와 이를 업으로 삼는 농부가 어떤 의미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중에서도 파종의 의미는 농사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인류사를 이끌어온 실질적인 세력이었지만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농부를 위대한 대상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농부를 거대한 크기로 그려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 그림은 미술계에서도 구설에 올랐다. 당시 기존 미술계에서는 신이나 왕, 영웅만을 이렇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밀레는 농부를 신이나 영웅 반열로 밀어 올린 셈이 되었다. 인류사에서 진짜 영웅은 농부라는 생각을 보여준 것이었다. 농촌 생활을 주제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기에, 농부 그림도 많다. 그런데 밀레에게도 이 그림의 농부는 사뭇 다르다. 기존의 농부는 향수 어린 농촌 생활의 일부로 다뤘다. 평화롭고 성실하며 투박한 농부였고, 때론 종교적 경건함과 노동의 숭고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도시인들의 농촌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런 정서의 그림이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의 농부는 농촌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이상화된 모습이 아니다. 전투적이며 강렬하다. 농부에 대한 생각이 비슷했던 고흐는 이 그림에 감동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그리기도 했다.

 

전준엽

THE MOVE  webmaster@ndsoft.co.kr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HE MOVE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