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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토록 혁신적인! 베토벤 피아니즘의 찬연함_<루돌프 부흐빈더 베토벤 사이클>마법사 같은 음색의 향연

 

그 누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전통적인 스타일과 극적인 서사를 구성해낼 수 있고, 그 누가 이들 소나타로부터 이토록 혁신적이면서도 완결성 높은 베토벤의 의미를 발견해낸 적이 있던가!

<루돌프 부흐빈더 _베토벤 사이클> | 통영국제음악당 9.15-16

 

장절한 사운드의 광휘

9월 15일과 16일 양일에 걸쳐 현존 최고의 베토벤 해석가로 손꼽히는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리사이틀>이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서울에서 그는 두 차례 리사이틀과 한 차례 협주곡 연주회를 가진 바 있었지만 초청공연의 성격을 띈 지라 홍보 부족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주목받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전력을 갖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흐빈더는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였지만, 바로 그 무렵부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 음반과 영상물(그는 이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세 번이나 녹음한 바 있다)로 발매되기 시작하면서 그 위대한 존재감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 동안 부흐빈더(1946년생)는 마우리치오 폴리니(1942년생)와 알프레드 브렌델(1931년생)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명성에 가려 그 이름이 갖는 무게감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그는 베토벤이라는 한 길을 60년 넘게 묵묵히 걸어온 고매한 베토벤 해석가로 전 세계인의 추앙을 받아왔다. 이러한 그가 바로 통영에서 단발성 1회 공연이 아닌, 이틀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처음으로 보여주게 된 것은 매우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1980년대 중반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내한 연주회 이후 가장 찬연하고 격양되며 성스러웠던 한국에서의 베토벤 피아노 리사이틀로 기억될 것이다. 일종의 베토벤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부흐빈더의 베토벤은 공연 내내 비할 바 없는 광휘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첫 날 첫 곡으로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부터, 평생토록 베토벤에 매진한 예술가적 집념이 낳은 장절(壯絕)한 사운드가 충만했다.

특히 이전 서울에서의 연주들, 혹은 필자 개인적으로 빈에서 들었던 그의 연주회들과는 또 다른 매력과 감동을 선사했는데, 무엇보다도 통영 콘서트홀의 탁월한 어쿠스틱과 고급스러운 울림, 서울 예술의전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관객 분위기가 통영에서만의 특별한 순간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수 없이 많이 진행해온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가 아니었음이 내심 아쉬웠지만, 이렇게 두 차례의 연주회만으로도 베토벤의 초기와 중기 소나타들이 그 성격이 어떻게 다르고 각 작품마다의 개성과 특징이 얼마나 현격한지, 그리고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고유한 미덕이 무엇인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날의 프로그램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10번, 13번, 4번, 14번 ‘월광’으로 진행되었다. 1번 소나타에서는 아다지오 악장의 포근함과 격정적인 프레스티시모의 악장의 대비가 돋보였는데, 청년 베토벤 특유의 혁명적인 혁신성 보다는 음악적 완결성과 밸런스, 장식음 강조 등등 베토벤 초기의 다채로운 표현력과 아이디어들을 우아한 스타일로 강조했다. 연주회 전체적으로 부흐빈더의 여느 연주 스타일에 비하여 의외로 옛스러운 컬러레이션과 서정성의 대비 및 변화의 묘를 선보였는데, 10번 소나타 1악장에서 새로운 내성부의 강조와 절묘한 음색 밸런스. 2악장에서 두드러진 왼손 멜로디, 3악장 스케르초에서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과 옥타브 유니즌의 영롱함, 조옮김에서 더 밝아지는 사운드. 비할 바 없이 고급스러운 스포르잔도 등등이 만들어낸 고급진 해학이 깊은 감동을 주었다.

13번 소나타에서 그가 보여준 드라마트루기는 실로 거장적이었다. 1악장의 짧은 도입부 이후 곧바로 드라마가 시작되는데, 슈베르트적인 흔들림과 발전, 번민, 일말의 단호함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2악장 알레그로는 베버스러운 무궁동적 화려함과 부흐빈더 본연의 투철한 비르투오시티가 흐름을 탄력 있게 장식했다. 특히 반음계의 몽상적 환영으로 그려낸 위압적인 왼손 옥타브의 전율감이 듣는 이의 숨을 멈추게끔 했다. 3악장은 가히 에스프레시오네의 절정으로서 환상적인 아르페지오와 트릴이 시공간을 현실에서 이탈케 할 정도였고, 악장 중단 없이 이어진 4악장 론도와의 숨막히는 대조, 그리고 펼쳐진 무궁무진한 도약과 페달링의 엄청난 효과. 손가락에 건반이 빨려올라오는듯한 흡인력과 쿠션감. 다시 1악장 주제의 평온함과 스트레타한 코다까지 부흐빈더의 거장적인 진면목이 유감없이 펼쳐졌다. 4번 소나타에서도 부흐빈더의 검투사적인 비르투오시티는 작열했는데, 난해한 패시지들을 한결 같이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동시에 2악장 그란 애스프레시오네의 청초함과 비애감의 대조, 3악장의 목가적 발랄함과 트리오 부분의 폭풍우 같은 옥타브 트릴의 대비, 4악의 방긋거리는 주제와 맹렬한 주제 사이의 극한 대비와 천연덕스러운 요소들의 대화 및 변용이 압권이었다.

 

프로그램의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곡 14번 ‘월광’ 1악장에서는 짙은 저역배음 위에 살짝 속도감이 느껴지는 모데라토 정도의 템포로 오른손이 질주. 정묘한 페달링이 저급한 감상성보다는 고차원적인 신비로움을 배가시켰다. 2악장에서는 왼손에서 듣지 못했던 새로운 멜로디(음반이나 영상물에서 듣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음향적 소격효과가 훨씬 강렬했다!)가 등장하여 대가의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3악장에서는 피아니스트의 강철 터치와 본연의 극적 감수성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가운데 지극히 빈 스타일의 밸런스와 음색을 견지하며 특징적인 스포르잔도와 미끄러지는 듯한 아르페지오, 울렁거리며 반짝이는 오른손 옥타브 리듬, 폐부를 찌르는 적절한 포르티시모, 긴장감을 더하는 찰라에의 루바토들이 펼쳐졌다.

첫째 날에 비해 둘째 날에는 보다 부흐빈더 본연의 강건한 구축력과 유려한 프레이징, 영롱하되 날이 바짝 서 있는 터치의 향연을 선보이며 일말의 대조를 이루었다. 이날의 순서는 2번, 9번, 15번 ‘전원’, 27번, 23번 ‘열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일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의 점층적인 확산감과 클라이맥스를 향한 치밀한 드라마트루기를 보여주어 부흐빈더만의 예술적 통찰력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누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전통적인 스타일과 극적인 서사를 구성해낼 수 있고, 그 누가 이들 소나타로부터 이토록 혁신적이면서도 완결성 높은 베토벤의 의미를 발견해낸 적이 있던가! 그는 빌헬름 박하우스로부터 기인한 독일 베토벤의 정신을 물려받은 진정한 독일 피아니즘의 적자임이 분명하다. 한편 27번 소나타에서는 그 다채로운 풍경과 만화경 같은 디테일의 표출에 몸을 웅크린 채 상체를 앞으로 수그리며 집중해 듣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표제적인 드라마 연출과 에너지의 교묘한 컨트럴, 마법사 같은 음색의 향연,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와 진한 여운은 단연 발군이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란 악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맥락과 독창적인 표현력으로 매순간 전혀 새로운 극적 세계를 창조해내는 참된 예술가를 뜻한다.

                                                               ” 

 

 

작열하는 에너지로 심원한 카타르시스

역시나 이 날의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곡 ‘열정’은 스피드 업된 템포와 낙차 큰 음량 대비, 극적인 표현력, 비할 바 없는 왼손의 카리스마와 오른손의 작열하는 듯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오페라 못지않은 방대한 스케일과 심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무엇보다도 낯설 정도로 새로운 내선율과 오페라적인 에피소드들의 대화, 매 순간 꿈틀대며 자체적인 변화와 발전, 대조를 이루는 음악적 요소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담이지만, 첫째 날에는 객석 앞줄에 앉은 한 여성관객이 자신이 직접 챙겨온 꽃다발을 무대 위 부흐빈더에게 전해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져 감동의 여운이 훨씬 배가되기도 했는데, 부흐빈더가 받은 그 꽃다발은 베토벤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감동한 한국 청중의 감사함을 담은 일종의 상징에 진배 아니었다.

양일에 걸친 부흐빈더의 앙코르는 폴리니의 연주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디저트적인 필업이 아닌, 극을 향한 화룡점정으로서의 마지막 일갈이었다. 첫째 날 '비창' 3악장의 그 격노의 옥타브 연타와 숨 막히는 왼손 음형이 자아내는 비창적 통렬함, 둘째 날 '템페스트' 3악장에서는 마침 통영에 몰아닥친 태풍을 연상시키는 듯한 질주하는 비애감과 그 안에서 빛을 발하는 타고난 비르투오소로서의 독보적인 광채에 청중은 녹다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란 악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맥락과 독창적인 표현력으로 매순간 전혀 새로운 극적 세계를 창조해내는 참된 예술가를 뜻한다. 그리고 그 연주 너머로 이전 시대의 독일 베토벤 스페셜리트스트들의 세계를 중첩하는 역사적 조망까지를 관통하고 있어야만 한다. 바로 루돌프 부흐빈더처럼 말이다. 빠른 시일 안에 이번에는 서울에서 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가 성사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글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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