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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 견뎌내는 음악의 예_브로큰티스 [추락은 천천히]음악은 추락의 순간마저 아름답게....음악이 그 곁에 있다
  •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 승인 2023.05.3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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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_BrokenTeeth_추락은 천천히


좌절과 슬픔은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마음이 요동치고, 삶이 흔들린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예술의 본령이기 때문인지 세상에는 좌절해 슬픔에 빠지거나 우울한 순간을 담은 곡들이 무척 많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받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해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 꿈을 실현하지 못해서 눈물짓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애수어린 멜로디, 슬픔에 겨운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이럴 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시간이 흐르면 지나갈 거라고, 그래도 삶은 계속될 거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자발적 선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나도 세상도 끝내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좌절하고 슬픔에 빠지는 일은 당연한 것일까. 좌절과 슬픔 앞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음을 다한 공감과 위로일까. 하지만 갈수록 좌절한 이들의 고백이 늘어나는 경향은 이것이 마음 여린 누군가의 심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증거다. 어떤 슬픔은 인생 자체에서 오지만, 누구의 삶도 세상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하고 생활이 편리해져도 햇볕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의 삶은 더 춥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아 얼어붙는다.

 

브로큰티스BrokenTeeth가 내놓은 음반 [추락은 천천히]는 세상의 수많은 슬픔과 좌절 가운데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을까. “너는 이 밤을 걸으며 / 어떤 것을 담았는지 /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지만 / 너는 어렴풋한 안개로 남아있어”(<해는 지고 있는데>)라고 노래할 때, 이 이야기는 어떤 삶에서 시작해 다른 삶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추락은 천천히]라는 음반 제목은 실패해버린 삶을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이는 뉘앙스를 숨기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순간을 경험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브로큰티스가 구사하는 슈게이징 음악의 언어는 좌절과 슬픔을 표현하는데 제격이다. 지글거려 흐리고 탁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는 심란해진 마음, 들끓고 파도치는 마음의 격랑을 표현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다. 보컬에 불어넣은 공간감과 부풀린 사운드 스케이프는 공허해진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마냥 밀려온다. 브로큰티스는 자신의 전작이나 다른 슈게이징 뮤지션들의 음악에서처럼 드라마틱한 구조를 활용해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이 경험했을 좌절과 슬픔의 낙차를 충실하게 재현한다.

 

브로튼티스의 음악에 대해 좀 더 언급해야 할 순서다. 좌절과 슬픔을 감성적으로 대변하는 일렉트릭 기타 멜로디에 대해, 감도 높은 멜로디를 뽑아내는 창작력과 테마를 끌고 가면서 변화시키고 상승시키는 흐름에 대해, 지글거리는 연주와 명징한 멜로디를 병치시켜 만들어낸 소리의 세계에 대해, 내 마음처럼 징징거리는 사운드의 울림으로 찾아오는 카타르시스에 대해 말해야 한다. 각각의 순간마다 느낄 수 있는 쾌감에 대해 빠짐없이 적어야 한다. 좋은 멜로디가 없으면 마음과 상황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고, 설득력 있게 변화하지 않으면 복잡 미묘하게 변화하는 마음의 기운생동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없다. 돌이켜보면 서투르고 미숙했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하고 치열했던 태도의 가치와 소중함을 옹호할 수 없다. 그저 잘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간단하게 줄여버릴 수 있는 이야기 안에도 얼마나 숱한 기대와 다짐과 낙담과 포기와 원망이 꾹꾹 눌려있기 마련인지.

 

음악은 추락의 순간마저 아름답게 형상화해냄으로써 그 순간을 경험하고 감당한 모든 이들의 편에 선다. 개인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내밀해지기는 했지만, 인류적인 것과의 연관성을 찾아내지 못했어도 “다시 또 불타오르길”(<잠수병>) 염원하는 마지막 곡의 목소리에서는 투지가 느껴진다. 견디고 받아들이고 다시 꿈꾸는 삶은 지지 않는다. 음악이 그 곁에 있다.

 

 

 

 

 

문득 눈에 띈 다락방 종이상자엔
금세 바래버린 시간들이 담겨있는데
사거리 앞 허물어진 하얀 벽돌집
죽은 시간들은 다시금 또 잠깐 피어나
회중시계는 언제나 빙글 돌아가
다시 돌아가라 빌어봐도 늘
우리 동네 외진 공터 한구석에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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