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웅순의 시조이야기 26

월정명(月正明) 월정명하니

배를 저어 추강에 나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가운데 명월이라

선동(仙童)아 잠긴 달 건져라

완월(玩月)하게

숙종 때의 인물 박상간(朴尙侃)의 시조이다.

우조 시조는 경제시조로 서울 우대, 즉 인왕산 기슭의 유각골(누상동·누하동)일대의 가객들 사이에서 즐겨 부르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우대는 웃대·상대라고도 하며 종로구 청운동에 있던 마을로, 고위 관직자들이 거주하였던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우조시조는 황·중·임의 계면조의 평시조에 황․태․중․임․남의 우조풍의 가락을 삽입시켜 부른 노래이다. 임기준․이문언․최상욱 등에 의하여 전창된 시조로 이름만 우조이지 순수한 우조 음계로 되어 있지는 않다. 원시조에는 ‘사공아’, ‘완월장취(翫月長醉)’인데 이 우조 시조에서는 ‘선동아’, ‘완월’로 바뀌어져 있고 翫이 玩으로 한자 또한 바뀌어졌다. 이 두 한자는 둘 다 ‘희롱하다’로 그 뜻은 같아 문맥상의 큰 차이는 없다.

참으로 달이 밝고 밝아 배를 저어 추강에 나가니 물 아래는 하늘이요 하늘 가운데 밝은 달이로다. 선동아, 물 속에 잠긴 달을 건지거라. 달을 즐기겠노라. 사공은 노를 젓는 사람이요 선동은 선경에 살면서 신선의 시중을 드는 아이이다. 신선의 경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완월은 달을 즐긴다는 것이요 완월장취는 달을 벗삼아 오래도록 술에 취한다는 뜻이다. 분위기와 곡에 맞게 일부 단어를 바꾸었다. 완월가지고는 즐길 수 없으니 여기에 술이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가 있는 법이다.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이 되었네.

‘술’하면 이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월하독작」의 첫 번째 시구이다.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외로웠었는지 달을 청하고 그림자까지 만들어 셋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긴다는 것이다. 필자는 작년에 중국의 이백의 유적지 이백고리에 갔었다. 달 아래 술잔을 들고 있는 이백의 조각상을 보았다. 무슨 시름이 그리 많았었기에 달, 그림자와 함께 술을 혼자서도 그렇게 마셔댔는가.

얼마나 취했기에 이 시조에서는 선동으로 하여금 물 속의 달을 건져 즐기려고 하는 것인가. 술, 달과 함께 ‘완월장취’한다 했으니 이 시조의 화자도 이백 못지 않게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성(酒星)이 하늘에 없었을 것이요.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땅에는 응당 주천(酒泉)이 없었을 것이네.

「월하독작」의 두 번째 시에 나오는 시구이다. 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하늘에 주성이 있을 리 없고 지상에 주천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엔 주성이 땅에는 주천이 있으니 술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궤변이기는 하나 이는 시만이 표현할 수 있는 낭만이 깃든 명구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화가 양기성이 그린 「채석착월도(採石捉月圖)」가 있다. 흐릿한 산수 너머 떠있는 달과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그린 그림인데. 관복차림의 이백이 채석강에서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가 물 속으로 막 빠지는 순간을 그렸다.

정작 이백은 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 것일까. 당대의 정사인 구당서나 신당서에는 그가 익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구당서에 술을 마시고 강변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 그래서 이백을 술의 신으로, 술의 대명사로, 또한 지금의 전설로 만들었나 보다.

애주가라면 달 밝은 밤이면 술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은 당연하다. 술 없이 인생을 논할 수가 없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지나친 술은 우리 몸을 해치고 있으니 따지고 보면 술이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다.

이 우조시조는 시조창의 맛도 맛이지만 가곡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속청을 내기도 하고, 음을 위로 밀어올리기도 하고, 흘러내리다 다시 올려쳐 내리기도 하고, 떨기도 하는 낭창낭창한 그 부드러운 맛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월정명은 가곡에서 평롱으로도 불리우는 곡이다. 평롱은 삭대엽에서 파생된 곡조로 얼롱·우롱과 같은 농계열의 곡이다.「평롱」의 ‘평’은 낮다는 뜻으로 처음을 높이 질러내는「얼롱」과 대가 되는, 처음을 보통의 음높이로 부르는 곡이다.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으로 모두 부르는 곡으로 장시조를 노래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규일 전창으로 남창에는「월정명」·「남훈전」․「물우희」·「만리장성엔」· 뿌리깊은」의 다섯 곡이 있고, 여창에는「북두칠성」·「각설이라」· 초당 뒤」·「옥돌이」·「아자 아자」·「한 손에」의 여섯 곡이 있다. 남창·여창 모두 노래말에 따라 가락이 조금씩 다르다.

청매가 홍매보다 봄이 먼저 온다. 필자의 연구실 옆집은 청매가 있고 앞에는 홍매가 있다. 날은 포근하나 간간이 부는 바람은 뼈속을 훑는다.

추강이면 어떻고 춘강이면 어떤가. 꽃이 피는 달 밝은 밤에 술 몇 잔이면 더욱 어울리리라. 잘 부르고 못 부르고가 있는가. 잘 못 불러도 달이 보아줄 것이요 못 불러도 꽃이 들어줄 것이다. 정작 현대인들이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정가의 맛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평생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월정명을 부르거나 들어보면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이것도 훌륭한 대체 의학이 아닐까.

석야 신웅순 (중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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