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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으면 깨닫는다_고선웅 연출평창동계올림픽 1년 후, 패럴림픽 연출자를 만나다

지난해 겨울, 평창에서 세계인의 축제가 끝난 지 일 년이 지났다. 수많은 이슈와 기대 그리고 환희의 기억들을 남긴 축제의 시간이 그렇게 일 년을 넘어가고 있다. 축제를 만들었던 특별한 인물 중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았던 고선웅 연출(연극)을 만나본다. 그는 이제 국립오페라단과 우리 정서를 지닌 한국 창작오페라 <1945>를 준비하고 있다.

 

Q.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았었는데

2015년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을 하고 있을 때, 2018년 동계올림픽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이 축제 개폐회식을 연출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조직위에서 같이 해보자고 연락이 와서 “마음을 먹으면 이루어지는 건가” 생각했었죠. 지명공모를 통해 총감독직에 두 번 프리젝테이션을 했는데 최종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또 연락이 와서 총감독이 아니라 연출을 맡아주면 어떠냐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문태 총감독님을 모시고 총연출 일을 하게 된거죠

 

 

- 총감독직과 총연출일에 대해 아쉬움이나 역할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일을 하고 나서 보니까 “총감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자리를 자연스럽게 찿아 갔던 것 같습니다. 국가행사라도 하는 게 개인이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판단들을 여러 변수들과 여러 이해관계들을 조율하면서 어떨 때는 박진감 있게 밀고 나가고, 어떨 때는 그 자리에 정체된 된듯하면서 버텨내는 내공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판단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조금 더 삶의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 해야 한다는 부분에 도달했죠. 이문태 총감독님이 그 역할을 잘 해주셨습니다. 이 분을 통해서 여러 가지 많이 배우고 세상을 사는 지혜, 처신과 처세를 배웠습니다.

 

연출인은 기능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총감독은 전체를 관리하는 관리자 역할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제 나이와 능력에는 연출이 더 적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후에 총연출이 모든 걸 다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걸 배웠죠. 자리를 잘 지켜야 하는 역할도 큰일이다 라고 또 배웠습니다.

 

 

- 패럴림픽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패럴림픽은 무조건 올림픽 개폐막식과 연동이 되어서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쇼나 셀럽 등도 마찬가지인데요. 올림픽의 쇼가 먼저 정리되고 마쳐야 저희들이 동어반복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예산의 문제도 있었지만 개폐막식 연출에서 사용한 이야기나 연출의 방식들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저희가 도달한 결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지 않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존재에 대한 컨셉트 였습니다. 결국은 인간이 저희 메시지의 중심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이벤트를 짜자’ 기술도 중요하지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예산 안에서 ‘사람의 힘’, ‘사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치중했던 것 같습니다. 표현방식은 ‘아날로그적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1년이 지나서 그 때를 떠올려보면 ’사람‘의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 본인이 의도한대로 연출이 다 이루어졌는지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거의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의도라고 실현은 저의 극단에서 연출을 하게 될 경우 뜻한대로 거의 다 실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패럴림픽 처럼 국가에서 하는 행사는 많은 이해관계자, 전문가, 경험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진 의도를 그분들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또는 설득 당하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제가 뜻한 것이 맞는 것인지 보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촛점이 맞춰집니다. 잘 절충하는 일이 저에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절충의 과정 속에 어떤 것은 포기하고 어떤 것은 선택하기도 했기 때문에 개인의 의도와 전체의 의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실행을 위해 가장 큰 변수나 어려움이 있었다면

 

날씨가 저희에게 그야말로 가장 큰 ‘장애’였습니다. 리허설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늘 눈 치우기 바빴습니다. 오픈 당일 개회식과 폐회식도 눈 때문에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 95cm, 45cm, 30cm 등의 잦고 많은 눈이 왔었는데 치울 수 있는 장소가 특설 그라운드 안이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자연과의 싸움이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사람들과의 불협화음, 갈등은 3년 동안 하도 많이 겪다보니까 나중에는 다 이렇게 일이 이루어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ㅎㅎ

 

- 어려운 과정을 통해 느꼈던 소회가 있다면

 

이 일을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공부, 마음공부 3년했다는 생각이고요. 저도 광고대행사, 수 많은 연출일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3년의 경험은 참 독특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이나 마음의 상처가 극한까지도 가고, 때로는 모멸감도 많이 느끼고, 존재에 대한 회의도 오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중간에 안한다고 하고 도망도 다니고 했었습니다. 결국에는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눈물). 끝까지 간 것, 그거를 잘한 거 같습니다. 끝까지 가고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성담스님이 “포기하지 않으면 깨닫는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연출자로서의 관객의 반응이 중요했을 텐데요

 

관객들의 반응까지 신경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일을 수행하고 이뤄내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이슈였기 때문입니다. 다치는 사람없이 사고 나지 않게 마치는 것. 눈길, 안전사고, 추위, 많은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많았고 큰 사고 없이 공연이 잘 마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거면 다 됐다‘라고 생각했었죠. 관객이 어떻게 보시는 것 보다 이 문제가 더 중요했었습니다.

 

- 연출자 입장에서 극장의 무대와 그라운드의 무대가 차이가 있다면, 그리고 변수가 생겼을 경우 대처 방법은

 

날씨 변수가 가장 큰 것이었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대안들이 중요했습니다. 눈이 오면 강릉체육관으로 옮겨서 행사를 치러야한다 등의 논의가 밤새워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연습한 장소에서 해야 한다. 눈이 와도 무조건 간다‘ 였습니다. ’간다‘라는 전제로 무엇을 준비해야지 실내 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겨서 간단한 기념식만 한다는 것은 저에겐 인정할 수 없는 불가능했던 일이었죠. 스타디움 안에서 준비한 쇼를 보여주고 프로토콜 몇 개를 보여주는 한이 있더라도 약속된 장소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야외행사라고 하는 변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지요. 날씨를 두려워하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구요. 저는 처음 부지를 선정할 때부터 갔었는데, 이 부지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어렵겠다고 했던 장소가 바로 스타디움 부지가 된거죠. 지나고 생각하니까 왜 여기일 수밖에 없었던가에 대한 조직위의 형편과 많은 제약 요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애초의 계획들과 다른게 방향을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것들과 다르게 선택을 해야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전체 속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는데 아이디어가 자꾸 딴 길로 가게되면 본맥락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원점에서 다시 프로그램의 어울림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이 저에겐 가장 복잡한 일이었던 것 갔습니다.

 

- 다음에 또 이런 정부의 메가 축제에 참가하실 의향이나 계획이 있으신지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이 일이 끝나고 나서 절대 안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또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경험도 없었고 국가적인 이벤트에 대한 조직의 이해와 판단 등이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아마도 총감독님이 계셔서 많이 의지도 하고 조직위에 기대었습니다. 그런 결정의 과정을 보고 경험을 하게 되니까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회가 되면 총감독직에도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각각의 파트가 안고 있는 스트레스를 좀 더 원활하게 조절하고, 하지만 총감독의 지위도 독립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별도일 수 없습니다. 총감독님의 독특한 아이디어도 실현되지 못한 게 많습니다. 여러 협의체와 국가적인 판단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수 많은 아이디어가 명멸해갔죠. 우리만의 축제가 아니라 전 세계인의 축제를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의 생각들이 더 많이 반영이 될 것인가, 국제기구가 가진 노멀한 프로토콜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충돌하게 됩니다. IPC가 가진 원칙과 대한민국만이 가진 문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갈등이 되기도 했습니다. 총감독님이 구현하고자 했던 한국의 ‘어머니’는 이해상충으로 인해 끝내 실현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 보완하거나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어떤 하나를 보완해야 되는 문제가 아니라 저는 ‘왜’, ‘왜’라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던 결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축제를 위한 시스템 즉 구조에 대한 고민들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정된 각각의 조직들에게 독자적인 능력을 인정해주고 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가 뭘까에 대한 고민이죠

 

- 축제의 시간을 빠져 나왔던 시간이 1년입니다. 뭘 하셨고 기분이 어떠신지요

 

1년 동안 바둑만 뒀습니다. 극단일과 연극연출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행사 끝나고 보름 동안을 매일 리허설 꿈을 꿨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아무리 공연이 힘들어도 공연 끝나고 리허설 꿈을 꾸어 본적은 처음입니다. 15일 동안 꿈에서 계속 눈오고, NG나고, 공연 못하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때 겪었던 어려움이 트라우마로 남았나 봅니다.

 

 

- 왜 그렇게 꿈을 꿨을까요. 실패에 대한 압박일까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과의 싸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눈 때문에 행사 마지막 프로그램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커튼콜 씬 등은 현장에서 정리할 수 밖에 없는데 시간이 나지 않아 끝내 리허설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거죠. 모두 예민한 상태로 난산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쌓인 것 갔습니다. 1년이 지난 후 그저께 자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람의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가공이 되기 마련인데 다 잘하진 못했지만 ‘선웅아 그래도 잘 견뎠다’ 라는 위로를 스스로 했습니다.

 

 

- 행사 후 공연연출에 변화가 있다면

 

평창 후 어떤 상황이 되어도 누구를 만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리적인 공포에서 해방되고 사람과 상황을 대하는 방식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 지금 준비 중인 작품 계획은

 

10년 동안 별러 온 배삼식 작가의 연극작품 <1945>를 국립오페라단과 오페라로 준비 중이고, 5월에 광주에서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소재로 작품 준비 중입니다.

 

에필로그

우리에게 평화와 화합의 감동을 안겨주었던 동계올림픽의 개폐막식과 그리고 소박하지만 인간의 가치와 공존의 중요성을 보여준 패럴림픽의 여운이 여전한 것은 그 감동때문이리라. 하루 아닌 몇 시간의 공연을 위해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3년이라는 기간 동안을 예산의 한계와 싸우고, 사람들과의 갈등과 싸우고, 국제기구와 조직위와의 구조적 갈등 때문에 고민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가치의 관점과 투쟁하고, 전혀 예측 불가능하고 타협하지 않는 자연과 긴 시간을 싸워왔다. 관람객이 온전하게 축제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 어쩌면 무대 뒤에서 이렇게 치열하고 처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기억은 각색되고 왜곡될 수 있지만 문화적 기억이라고 불리는 집단 기억은 고스란히 개폐막식을 지켜보거나 현장을 지킨 사람들의 기억 속에 큰 감동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버텨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의 보상은 축제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이 얻게 되는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본 경험과 같지 않을까. 축제를 만드는 사람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도 그 ‘경계‘를 넘어 온 사람들이다. 더 높은 경계를 다시 넘을 수 있다면 기꺼이.

 

권재현(축제기획자 · 중앙대학교 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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